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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보름 각연주지스님 법문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12-14 / 조회수 : 1189

 

다도향기가 가득합니다.

기축년 보름 동안거 개회하는 날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정진(精進)의 결제일을 맞이하여 공부시절의 인연이 얼마나 무르익었나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병아리가 부화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병아리가 안에서 ‘톡톡’ 칩니다.

그러면 어미닭이 이 소리를 듣고 ‘탁탁’ 치면 알이 깨지고 부화가 되죠.

안에서 병아리가 ‘톡톡’ 치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닭이 ‘탁탁’ 치는 것은 “탁”이라 합니다. 동시에

“줄-탁”이 이루어져야 병아리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묘한 이치입니다.

여러분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 깊숙이 들어가서 부처님의 법과 자주 만나다 보면 부처님이 되십니다. 선지식이나 큰스님들께서도 ‘줄-탁’으로 제자를 제접해 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절인연이라 하여 제자가 얼마나 깨달았는지 못 깨달았는지 관리하며 지켜보다가 한방 먹이고 ‘봉’ 이니 ‘활’이니 한 마디 던지는 걸 “줄탁동시”라 합니다.

“시절인연이 왔구나. 제자가 이만큼 깨달았구나” 를 관찰하다가, 선지식들이 한마디 던지면서 깨침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아 기다린 스님이 달마스님입니다.

달마스님은 면벽(묵언)을 9년 정진하셨습니다.

여러 스님이 오셨다 가셨지만 아무 말도 없이 벽만 바라보고 계시니, 왔다가 가고 왔다가 가고..

눈 밝은 납자가 올 때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하며 그렇게 9년 면벽을 하고 나니 시절인연이 이어져

혜가스님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혜가는 중국 낙양의 무뢰사람으로 어릴 때 신광으로 불렀습니다.

속성은 희(姬). 초명은 신광.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여 많은 서적들을 두루 읽던 어느 날 불서를 읽다가 얻은바가 있어 출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낙양 향산사로 출가한 신광은 여덟 해 동안 좌선에 몰두하였습니다.

어느 날 신광이 선정에 들었는데 홀연히 한 선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머지않아 과의를 얻을 그대가 어찌하여 여기에 막혀있는가 남쪽으로 가거라.”

이튿날 신광은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이를 본 스승(보정선사)이 고치려하자 허공에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 신광은 뼈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예사 아픔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제야 신광은 선인이 말한 바를 이야기 했더니 스승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 얼굴이 길하고 성스러우니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리라. 남쪽으로 가라함은 소림을 일컫는 것이니 달마대사가 너의 스승이니라.”

신광은 은사스님을 떠나 소림굴 달마대사를 찾아갑니다. 그때 달마대사는 9년 동안 면벽 좌선에만 몰두하고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예불도 하지 않고 법이 무르익기만을 기다리며 면벽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광은 답답함을 풀려고 아침저녁으로 달마대사를 섬기며 법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묵묵부답이었고 그럴수록 신광은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며 정진하였습니다. 옛 선지식들은 도를 구하고자 뼈를 깨뜨려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카락을 진흙땅에 심고 벼랑에서 떨어져 굶주린 호랑이의 먹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신광은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와같이 행하지 못하는가” 하며 자책을 합니다.

그 해 동짓날 초아흐레 날이었습니다. 밤새 큰 눈이 내렸는데 신광은 달마대사가 정진하는 굴 밖에 서서 꼼짝도 않고 밤을 샜습니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이 넘도록 쌓였고 달마대사는 그때까지도 꼼짝 않고 눈 속에 있는 신광을 보았습니다.

“네가 눈 속에서 그토록 오래 서 있으니 무엇을 구하고자 함이냐?”

“바라건데 스님께서는 감로의 문을 여시여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 주시옵소서.”

“부처님의 위없는 도는 오랜 겁 동안을 부지런히 정진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 그러하거늘 너는 아주 작은 공덕과 하잘 것 없는 지혜와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다운 법을 바라고 있으니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달마대사의 말씀을 듣고 신광은 홀연히 칼을 뽑아 자기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러자 때 아닌 파초가 피어 잘라진 팔을 고이 받히는 것이었다. 신광의 구도심이 이처럼 열렬함을 본 달마대사는 신광에게 “혜가” 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자 혜가의 왼팔이 다시 본디의 자리로 가 붙었다.

 

혜가: 부처님의 법인을 들려주소서.

달마대사: 부처님의 법인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니라.

혜가: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달마대사: 불안한 네 마음을 여기에 가져 오너라.

혜가: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 이미 너를 편안케 하였느니라.

이 말 끝에 혜가는 크게 깨달음을 얻어 달마대사로부터 법을 이어 받아 중국선종의 2대조사가 되었습니다. 혜가대사는 34년 동안 업도에 머물며 법을 설하다가 552년에 제자 승찬에게 법을 전하고 그해 그의 나이107살이 되어 입적을 합니다.

신도님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 법을 만나다 보면 부처님께서 톡톡 깨쳐주십니다. 병아리가 나오듯이 기도정진의 결과로써 부처님께서는 해탈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부처님을 찾아서 만나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 염불, 진언, 간경, 좌선이 나를 만드는 수행에 소홀히 하면서 노후대비 미래에 대하여 근심 걱정만 합니다. 여러 가지 사향심으로 준비도 하고 그저 묵묵하게, 자유롭고 상서로운 마음으로 그날그날 부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다 알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현상, 물질, 육신, 준비 등은 해봐야 궁극의 해탈, 즉 윤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줄탁동시’ 로 인해 우리가  열심히 정진하면 그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노천명 시인의 작품 중에 ‘고향’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언제든 가리/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고향으로/.../ 언제든 가리/ 나중에 고향가 살다 죽으리/ 메밀 꽃이 하얗게 피는곳/ ...”

시인의 말처럼 고향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포용하는 곳이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고향의 품에 영원토록 안기고 싶은 미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마스님이 혜가에게 법을 전하고 돌아가시자 웅이산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몇 해후 송운이라는 사신이 인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이라는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스님이 신발 한 짝을 메고 고개를 올라오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바로 달마대사였습니다.

“스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너희 나라와는 인연이 다하여 본국으로 돌아간다. 네가 인도를 떠날 때 임금은 죽었어. 가보면 새 임금이 계실테니 내 안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스님이 새 임금을 알현하면서 달마 대사를 만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달마대사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는데 총령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다니..

달마대사의 묘지를 파보니 과연 관은 비어있고 신발 한 짝밖에 없었습니다.

- 달마대사 수후척리(신발 한 짝 갖고 갔네)

해탈은 보통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비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향을 뛰어넘어 금생에 열심히 정진하여서 미련 없는 본시 이래, 즉 한 물건도 없는 그 자리에 애착하지 않고 가기로 약속합시다. 나의 줄탁동시와 시절인연이 어디쯤 왔는지 둘러보고, 또 얼마 남지 않은 기축년 한 달을 아쉬워하지 말고 부처님 법을 찾아 수행정진하는 불자가 됩시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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